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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가르침 기리려 모교에 거액 기부

모교의 은사를 기리기 위해 남가주 동문이 300만 달러의 거금을 쾌척했다.   남가주와 메릴랜드를 오가며 항공기 개조 관련 비즈니스를 하는 이효상(물리학과 62)씨는 지난달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옛 문리대)에 200만 달러를 기부했다. 앞서 이씨는 지난 2020년 100만 달러를 먼저 전달해 총 300만 달러를 모교를 위해 내놨다.   이씨의 기금은 오는 2025년 완공 예정인 ‘고 김철수 교수 기념관 설립기금’으로 사용된다. 이씨는 기념관 건축비가 더 들 것으로 예상해 추가기부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기부금 액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학교에 따르면 고 김철수 교수는 1960년부터 17년동안 서울대 물리학과에서 교수로 재직했으며, 이씨는 학부와 대학원 시절 고 김 교수를 지도교수로 만나 사제지간의 연을 맺었다.   이씨는 학사와 석사 학위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고 김 교수의 가르침이 토대가 되어 그 은혜를 갚는다는 의미로 고액을 기부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씨는 기부금 전달식에서 “미국에 올 때 600달러를 들고 와서 온갖 고생을 하며 공부를 했고 아내는 아기를 키우면서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해 정부기관에 취업할 수 있었다. 그러한 노력과 고생이 오늘의 기부로 이어진 것 같다”며 서울대의 학문 종합화에 기여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씨는 석사를 마친 후 부인 배수옥(농생대 70)씨와 함께 펜실베이니아로 떠나 리하이대학에서 박사학위(유체역학)를 받고 캐나다에서 잠시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다 리서치 비즈니스를 세우며 본격적인 사업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90년부터 헬리콥터, 여객기의 업그레이드와 개조에 필요한 하드웨어를 공급하는 제조업으로 사업을 확대, 현재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업으로 자리를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김철수 물리관’으로 불릴 고 김철수 교수 기념관은 관악캠퍼스의 중앙도서관 옆에 4층 규모 건물로 신축된다.     지하에는 아이디어 팩토리와 3D 프린터 룸 등 학생용 공간으로 꾸며지고, 1~3층에는 실험실과 회의실, 네트워크 라운지가, 4층에는 집단 연구 클러스터를 위한 공간이 설치되는 등 물리천문학부 학생들과 연구자들을 위한 각종 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서울대는 지난해 11월 28일 열린 기공식에 참석한 이씨 부부에게 공로패를 증정했다.     유홍림 서울대 총장은 “서울대가 새로이 학문의 열림과 어울림을 통해 학문 간의 소통과 통합을 이루는 ‘SNU Commons’에 물리천문학부의 김철수 물리관 건립은 큰 의미가 있다”며 “이효상 박사의 큰 기부가 이러한 시발점의 초석이 됐다”고 치하했다.   김형도 물리천문학부 학장은 “이번 기부는 이효상 동문 본인의 스승을 기리는 의미뿐만 아니라, 교수와 학생들이 단순히 지식을 주고받는 것을 넘어 진정한 사제지간의 관계를 이루어야 한다는 기부자의 바람이 담겼다”고 말했다.  장연화 기자 chang.nicole@koreadaily.com월요일자 스승 거액 기부 물리천문학부 이효상 기부금 전달식

2024-01-07

“기부 문화 기폭제 됐으면” 연대에 100만불 기증

"한인사회에 기부문화를 확산시키는 기폭제가 되었으면 합니다." 15일 윌셔은행 이사장실에서 열린 기부금 전달식에 참석한 백영중 패코스틸 회장의 얼굴에는 미소가 어렸다. 평소 지론이었던 사회환원을 몸소 실천해서 일까. 이날 백 회장은 연세국제재단에 100만 달러의 기부금을 전달했다. 평소 흥사단 출신으로 흥사단은 물론 한인사회를 위해 크고 작은 기부를 해온 그지만 이번처럼 100만달러에 달하는 거액은 아니었다. 사실 몇년 후로 예정됐던 기부금 전달을 앞당긴 것은 이번 몽골 방문 때문이었다. 백 회장은 지난달 31일부터 8월 3일까지 몽골 국립대학교 초청으로 몽골을 찾았다. 이번 방문은 자서전 '나는 정직과 성실로 미국을 정복했다'(랜덤하우스 출간)의 몽골어판 출판기념회 참석차 였다. 백 회장은 이번 몽골 방문이 '봉사의 국제화'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됐다. 백 회장이 숭배하다시피 하는 도산 안창호 선생을 몽골사람들이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또 세브란스 의대 출신인 이태준 박사가 국적을 초월해 몽골인이 가장 존경하는 한국인으로 꼽히고 있다는 사실도 그를 놀라게 했다. 의료 선교차 몽골을 방문한 이 박사는 평생을 이곳에서 봉사한 뒤 숨을 거뒀다. 몽골 정부는 이를 기려 공원을 조성하고 기념비를 세웠다. 이박사에 영향받은 많은 수의 몽골 학생들이 의학도의 길을 택했다. 백 회장은 이를 보며 실력있는 후학을 양성해야겠다는 결심이 확고해진 것이다. "죽고 나서 100만불 기부하는 것보다 지금 당장 기부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백 회장은 미국에 도착하자 마자 연대 동문회 관계자에 알려 기부금 전달을 서둘렀다. 이날 전달식에 참석한 고석화 윌셔은행 이사장은 "요즘은 너도나도 경기가 어렵다고 하는데 백영중 회장이 후학을 위해 선뜻 거액을 내놓는 모범을 보였다"면서 "한인사회에서도 이 정신에 동참하는 일들이 많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최상태 기자 stchoi@koreadaily.com

2008-08-15

55년간 몸담은 흥사단 은퇴 패스코틸사 대표 백영중 '정직, 부지런, 사랑···3계명이 성공 열쇠'

"정직과 성실로 군밤장수에서 철강왕이 됐다." 6.25 동란이 한창이던 1952년 부산. 광복동 사거리에 군밤파는 키작은 소년 하나가 있었다. 체격은 왜소했지만 반짝이는 눈망울을 가진 그 소년은 천하장사 못지 않은 목소리로 군밤을 팔았다. "군밤 사세요 평양식 군밤이에요." 반세기에 까가운 시간이 흐른 1999년. CNN USA 투데이 등이 후원하고 세계적인 회계법인 어네스트&영이 주최하는 '전국기업인'상 시상식장. 중년의 키작은 동양인이 상을 받기 위해 단상에 올랐다. 바로 부산에서 군밤을 팔던 그 키작은 소년이었다. 자신의 첫 이력서를 '군밤장수'로 시작한 이 소년은 현재 미국 경량철골 시장 60%를 장악해 철골시장의 '거인'이 된 '패코스틸'의 백영중(77.사진) 사장이다. 평안남도 성천이 고향인 그는 한국전이 발발하자 단신으로 월남해 부산에 거처를 마련했다. 군밤장사로 모은 돈으로 그는 연희대학 부산분교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오직 공부만이 살 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그는 도산 안창호 선생이 만든 '흥사단'과 인연을 맺게 됐다. 그는 훗날 흥사단과의 만남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고 회고한다. 당시 미국 선교사들의 영향으로 미국 유학꿈을 꾸던 그는 시 '불놀이'의 작가 주요한 선생은 만나 흥사단 장학생으로 미국땅을 밟게됐다. 미주 흥사단과의 만남에서 그는 유학자금을 만들기 위해 거짓말을 했던 사실을 무용담인양 자랑했다. 하지만 당시 흥사단 미주 위원장이던 한시대 선생이 "아니 젊은 사람이 그런 거짓말을 하고 다니나? 그래서 우리나라가 어떻게 발전하겠나?"라고 호통을 쳤다. 한참 화를 낸 한 선생은 잠시후 "자네에게 거는 기대가 커서 그랬네 앞으로 거짓말 하지말고 열심히 노력해 자랑스런 한국인이 되게나"라고 그를 다독거리며 100달러를 꺼네 쥐어줬다. 그는 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앞으로는 절대 거짓말 하지 않겠다. 정직과 성실로 미국에서 성공하겠다'고 다짐했다. 대학을 다니며 대기업의 엔지니어로 일하며 나중에 '패코스틸'을 창업해 사장이 돼서도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결국 정직하고 성실한 기업인으로 인정받았고 그 권위있는 '전국기업인'상을 받게 된 것이다. "비즈니즈를 하면서 목숨을 걸고 지키던 3가지 흥사단 계명이 있어요. '정직하라 부지런하라 사랑하라' 이 3가지를 지킨 것이 오늘 제 성공의 비결입니다." 그는 지난 1월 55년간 몸담았던 흥사단'에서 은퇴했다. 현역에선 은퇴하지만 그가 보여준 '도산정신'은 멈춤이 없다. "젊은이 여러분 세상에 불가능은 없습니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미국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꿈을 크게 가지세요." 신승우 기자 gowest@koreadaily.com

2007-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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